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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희 개인전 “날들의 피부”는 작가의 일상을 감싸고 있는 중첩된 감정을 드로잉으로 얇게 펼쳐 놓은 전시이다. 작가는 매일매일 책이나 공책에 하는 소략한 드로잉에서부터 전시장 벽면을 모두 차지하는 대규모 드로잉까지 일기를 쓰듯 자신의 느낌과 사고를 꾸준하게 물질화한다. 그러니까 허윤희는 드로잉이라는 형태로 외부세계와 부대끼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통해 다시 자신의 외부를 반성하고자 하는 것이다.
 
허윤희의 작업에서 배, 집, 강, 태아와 탯줄 같은 이미지들은 일종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그러니까 그것들은 독일 유학시절 느꼈던 외로움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에서 비롯된 것으로 ‘나는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라는 철학적 사유와 닿아 있다. 구체적으로 배와 강은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심정을, 그리고 집은 고향을, 태아와 탯줄은 어머니 뱃속에 있었을 본연의 모습을 각각 상징한다.
 
이러한 상징적인 이미지들과 더불어 허윤희가 주로 사용하는 재료는 목탄이다. 목탄은 작가의 감정표출을 도와주는 매체인데, 이는 쉽게 지워지는 특성상 이미지의 수정이 용이하다. 따라서 빠르고 신속하게 작가의 감정을 이입할 수 있으며 수 없이 그렸다 지웠다를 반복하는 신체적 행위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다시 말해 허윤희는 드로잉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는 동시에 드로잉을 하는 행위를 통해 감정의 응어리를 토해내는 것이다. 허윤희의 드로잉에서 제작 과정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시장 바닥에 부러지거나 가루가 된 채 떨어져 있는 목탄의 잔재는 이러한 작업 과정을 짐작케 하는 요소이다.
 
허윤희는 드로잉의 일반적인 성격 곧, 즉각성, 속도감, 신체성과 같은 특성을 충분히 자기화하고 있다. 동시에 전시장 벽, 아파트 외벽 같이 보존이 불가능한 곳에 드로잉을 함으로써 사각의 화면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드로잉의 한계를 극복하고 ‘상업적인 수입을 위해 부수적으로 제작하는 작업’이라는 드로잉의 오명을 벗겨 주기도 한다. 이번 인사미술공간 전시에서 허윤희는 전시장 벽면과 계단 벽 등을 이용한 월 드로잉(wall drawing)을 보여준다. 전시장에는 허윤희가 주로 사용하는 이미지인 배와 집이 등장하는데 여기서 어디론가 떠날 것 같은 배는 전시장을 돌아 결국 집으로 귀의하는 구도를 갖는다. 또한 옥상으로 통하는 계단에는 더 높은 곳을 향해 손짓하는 잡초의 이미지로 관객들을 강하게 흡인한다. 이러한 공간에 대한 해석은 드로잉을 단순히 벽에만 머물러 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개입을 통해 공간을 통째로 새롭게 인식하도록 촉구하는 것이다.
 
강성은 / 인사미술공간 큐레이터 





작가와 만나다 - 허윤희


참가자 / 작가(허윤희) , 창동 스튜디오 작가(박소영, 유근택, 서진석, 박병춘, 채우승,김혜련,김태헌),
            작가 친구 총 11명
 
진행 / 강성은 큐레이터
 
취지 / 현재 인사미술공간에서 전시 중인 허윤희 작가와 같은 공간(창동 스튜디오)에서 작업하는
         작가들 상호간에 작가로서 혹은 동료로서 좀 더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자리 마련.
 
 
 
요   약>> 
목탄을 매체로 벽과 켄트지에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작가의 이번 전시는 메시지를 전하는 방식에서 벽화 작업을 하는 요즘의 다른 작가들과 차별성을 지닌다. 작가는 시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1차적으로 전달하고 그것을 걸러내어 은유적인 드로잉을 통해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이러한 작가만의 이야기 방식이 이번 워크샵의 주요 논의 사항이었다.
 
작가로서 지내오면서 풀어나간 고민들과 현재의 작업이 나오기까지의 변화 과정에 대한 솔직한 작가의 생각을 들을 수 있었고 또한 동료 작가들이 평소에 갖고 있던 작가에 대한 생각들과 궁금한 점에 대한 적극적인 대화가 오갔다.

의   의>> 
같은 공간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작가들간의 만남이라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보다 진솔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였다. 작가로서의 고민과 이야기를 담아내는 방식에 대한 보다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더 의미가 깊었다.


강성은 : 전시를 마치고 나면 작가 분들이 전시에 대한 반응을 무척 궁금해 하시는데 거기에 대해서 저희도 명료하게 답을 드릴 수 없어서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던 중에 올해 기획초대전부터 작가별로 전시 중에 소규모의 워크샵을 통해 참여자와 작가 간의 적극적인 토론의 장을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참여자는 큐레이터들을 비롯한 관련 분야 종사자들 혹은 공통된 작업 성향을 갖는 작가들이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번 인사미술공간의 기획초대전 작가 분이신 허윤희씨께서 창동스튜디오에 입주해 계신 관계로 이번 워크샵은 창동 스튜디오에서 작업 중이신 작가 분들과의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허윤희씨의 작업에 대한 궁금한 점이나 작가로서 자신의 작업에 대한 이야기들, 또는허윤희씨와 연관된 이야기 등 다양한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나눌 수 있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지금 여기 모이신 분들은 회화쪽 작업을 주로 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대학시절 미술을 전공하였기 때문에 작가 분의 드로잉에서 와 닿는 면이 있는데요, 작가 분들께서 작업하실 때의 특별한 경험이나 현재의 작업에 대한 이야기 혹은 허윤희씨 작업에서 궁금한 점 편안하게 얘기해주셨으면 합니다. 유근택 선생님께서는 회화 작업을 하시면서 ‘그리다’라는 경험에 대해서 어떠신지 궁금한데요.
유근택 :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 자체에서 오는 주술적인 내지는 본질적인 대화가 저한테는 맞아서 한다고 볼 수 있겠죠. 저는 먹을 사용하여 작업을 합니다. 먹이라는 것이 전통에 얽매이는 면도 있지만 먹을 사용한다는 아날로그적인 작업이 저에게 맞고 처음 그림을 ‘그린다’는 것의 시작이 먹을 통해서 였기 때문에 먹을 계속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실 먹이 엄청난 고민이 되는 매체인 것은 사실입니다. 아이러니하게 생각하실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먹을 계속 붙잡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능성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들 그리고 먹이 무엇보다 중요한 재료로서 저에게 의미 있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허윤희 씨는 목탄을 사용하시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허윤희 : 연필이랑 목탄을 매체로 하는 것은 단순한 작업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긴 하지만 저에게 연필은 힘이 들었습니다. 반면, 목탄은 지울 수도 있고 애매모호한 표현이 가능하여 제 성격상 분위기가 목탄과 적합하다고 생각하여 목탄으로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목탄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는 시적이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 지우고 고치고 하면서 만들어지는 흔적들과 쌓이는 목탄 가루들, 손으로 계속 문지르면서 재료와 신체가 접촉하여 표현할 수 있다는 것 등의 매력이 한데 어우러져 그 분위기가 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번 전시가 벽화 작업이라 보존이 안 된다는 점이 아쉽기도 하지만 작업을 진행하는 동안 즐겁게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강성은 : 허윤희씨의 이번 벽화작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여러분들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박소영 : 저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아니지만 처음에 허윤희씨가 벽화작업을 한다는 데에 반대했습니다. 벽화 자체가 식상 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벽화는 영구보존 되는 것에 매력이 있다고 생각했고 또 공동작업에 의한 것이 더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또 허윤씨에게 목탄이 아닌 다른 매체를 사용할 것을 권했습니다. 목탄이 갖는 영구적이지 않고 뭉개지고 날라가는 특성 때문에 작업의 진가가 덜 발휘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허윤희씨의 작품이 완전한 상품(?)이 되길 바랍니다. 전시를 위해 보이는 것도 좋지만 소유하고 싶은 사람이 그것을 소유할 수 있는 작품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지요. 또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켄트지에서 느껴지는 작업의 느낌과 벽화에서의 그 느낌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궁금한 것이 있는데요, 목탄은 헥사티브를 뿌려도 오래 못 가지 않나요?
박병춘 : 꽤 오래갑니다.^^ 헥사티브를 뿌리고 액자에 끼우는 등의 보존의 노력만 있다면 말이죠.. 저는 허윤희씨의 이번 개인전이 작업과정을 보여주고 부스러진 흔적들이 어우러져 하나의 작품이 되는 것에서 꽤 설득력이 있다고 봅니다.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제가 칠판에 수묵을 그렸을 때 사람들이 작품의 보존성에 대한 우려가 있었고 저 자신도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작품이 계속 보관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났고 그 작업은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웠습니다.
강성은 :  저는 허윤희씨의 목탄드로잉 작품에 액자하는 것을 반대하였습니다. 목탄작업을 액자로 하면 목탄 특유의 느낌이 살아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유근택 : 작업이 갑자기 목탄으로 점철되었습니다. 그 이유가 있습니까?
허윤희 : 처음 독일로 유학을 갈 때에 한국에서 목탄이랑 연필을 가져갔습니다. 처음 학교에 갔을 때 재료비가 만만치 않아서 가볍기도 하고 싸기도 한 목탄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드로잉 시작 시에는 목탄과 쓰다 남은 종이가 주 재료였습니다. 그 시절에는 그 것만으로도 제 이야기가 다 되었습니다. 물감과 목탄 작업을 병행하기는 하였으나 목탄으로 하는 작업이 그리고 싶은 것을 바로 제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꽤 유용했고 재미있었습니다. 작은 종이에다 드로잉을 시작하여 점차 큰 종이로 이동하였습니다. 큰 종이를 바닥에 펴서 그 위에다 작업을 하였는데 내 무게를 실어서 맨발로 목탄을 으깨고 내 힘을 온전히 실어서 그림을 그려나가는 과정이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러다 벽으로 옮겨간 것이죠.
친구2 : 저는 허윤희씨를 대학시절부터 봐왔습니다. 유학시절에는 편지를 직접 써서 작업의 내용을 함께 보내주었습니다. 작업을 처음 보았을 때 처음 한 생각은 ‘재료비가 싸서 목탄을 썼구나’ 였습니다. 경제적인 여건도 그렇고 유학생활이 얼마나 힘든 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저는 허윤희씨의 목탄 작업은 비록 단순한 동기로 시작했지만 그것을 충분히 실험하고 자기화한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작업의 매체선택은 무엇을 그리고자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봅니다. 허윤희씨가 표현하고자 하는 기억, 솔직한 자기 자신의 모습과 같은 것은 목탄이라는 매체 자체에서 오는 분위기 가령, 가볍고 얇으면서도 그 안에 느껴지는 부피감 때문에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더 부각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강성은 : 저는 허윤희씨의 벽화 작업이 작은 종이에 그렸던 것이 벽으로 옮겨지면서 닫혀 있던 그림을 공간을 점유하고 거기에 시간성이 부여되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젊은 작가들 중심으로 벽에다 그림을 그리는 작업이 많아지고 있는 성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박소영 : 그런 것들이 유행처럼 번져서 벽화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특히 허윤희씨 같은 경우에 제가 반대했던 이유가 회화자체로서 보여주는 작업의 진가가 떨어질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강성은 : 저는 이야기 하고자 했던 것이 목탄이라는 매체를 사용하고 그것이 벽에 그려짐으로써 더 확실하게 전달된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만 벽이 좀 더 높았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긴 합니다.^^
허윤희 : 처음 벽화작업을 한다고 하였을 적에 전시 후에는 어떻게 할지에 대해 주위에서 걱정 내지는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지워서 사라지고 없어지는 작업도 해보고싶었습니다. 작업을 하면서 허무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색즉시공’에 대한 생각들이 그 원인이었죠. 그래서 그  때에는 작업도 손에 잡히지 않고 괴로웠었는데 그 시기가 지나고 나니 그 다음에는 ‘공즉시색’이라는 말이 뇌리에 박히게 되더군요. ‘공’이지만 항상 하나하나가 의미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지금 이 순간이 더 소중하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번 벽화작업을 통해 저의 이러한 생각을 드러낼 수 있어 작업을 하는 내내 즐거웠습니다.
강성은 : 유학 시절에 벽에다 아파트 벽에 한 작업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허윤희 : 제가 살던 도시 외곽에 빈민촌 아파트가 있었는데 그 아파트는 비어있는 집에 꽤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 아파트가 지역 미술프로그램에 활용된 것입니다. 아티스트에게 아파트 한 가구씩 열쇠를 주고 개인 당6개월씩 그 곳에서 살면서 작업을 할 수 있게 한 것이죠. 예를 들면 사진 찍는 친구들은 그 지역 주민들의 증명사진을 찍어 사진전을 열기도 하였고 폐쇄되었던 오래된 다방을 수리하여 다시 오픈 해서 여러 공연을 하는 등의 다채로운 작업들을 선보였습니다. 그 곳은 23층 아파트였는데 저는 벽에 그려진 낙서들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정치적인 문제에서부터 성문화에 이르기까지 문화전반을 아우르는 낙서들이 표현되어있어서 그네들의 삶이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저 같은 경우에는 ‘저기서 내가 무엇을 할까’ 생각을 하다가 제 그림과 그곳의 그림을 섞어서 무엇이 예술이고 무엇이 낙서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낙서를 그대로 두고 제 낙서를 슬쩍슬쩍 더했기 때문에 묻혀서 동화된 작업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진석 : 궁금한 점이 있는데 좋아하시는 작가 분이 있으신지요?
허윤희 : 저는 개인적으로 특별히 좋아하는 작가는 없었습니다. 독일 유학 중에 교수님께서 제 그림을 보시고는 한 작가의 카탈로그를 건네 주셨는데 그 후로 그 작가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서진석 : 질문을 드린 이유는 제가 아는 작가면 상대적인 유추를 통해 허윤희씨의 작업에 대해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였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미술계 안에서 다른 작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나만의 스타일을 구축해나가는 작업과 내 안에서만 빠져들어서 하는 작업으로 작업의 스타일을 분류할 수 있다고 봅니다. 소위 말하는 스타 작가들이 용이하게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방법이 전자라고 봅니다. 허윤희씨는 벽화작업을 보면서 후자라는 생각을 했는데 4층의 드로잉 작업에서는 전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허윤희씨는 본인이 어떤 스타일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우리나라 작가 중에 시각적으로 강한 작업을 하는 작가가 드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허윤희씨의 벽화 작업을 처음 보았을 때 이모션한 면이 강해서 주관적이지만 벽화에 그려짐으로써 더 효과적으로 전달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드로잉 작업은 타 작가들과 비슷한 면이 없잖아 있지만 벽화 작업은 그렇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비록 지워져 없어져 버리는 아쉬움이 있기는 하지만요.
김태헌: 작업의 과정을 보여주는 것은 어떤 의도인지 궁금합니다.
허윤희 : 제 작업의 과정을 보여주는 것은 다른 작업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는 과정과 마찬가지로 지우는 것도 작업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김태헌 : 순간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은데요.
허윤희 : 저는 영원한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또 그럴 수 있다고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그렇지가 않더군요. 변하는 것을 인정하고 그러다 보니 예전에는 순간순간 변하는 것이 싫었는데 어느 순간, 순간 순간이 진실하다면 영원과도 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영원이란 것이 있으면 그것이 소중한 줄을 모를 것입니다. 없어지기 때문에 더 소중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김태헌 : 본인의 작업과 미술판과의 소통지점에 대한 생각은 어떠하신지?
허윤희 : 저는 ‘미술판’은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제가 체험을 해야지 남이 뭐라고 하는 것에 따라 움직이지 않습니다. 직접 부딪히는 과정을 통해서 깨닫는 것이 제 작업 방식입니다. 제 작업이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주관적인 것에 대한 위험요소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제 얘기를 가장 진실되게 얘기하고 보는 이로 하여금 공감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었습니다. 솔직한 것이 가장 잘 통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박병춘 : 한국에 온지 얼마나 되었죠?
허윤희 : 1년 3개월정도 입니다.
박병춘 : 한국으로 돌아올 때 두려움도 있었을 것이고 귀국 후 창동 스튜디오에 들어와서 작업하였기 때문에 한국 미술계에 대한 적응력이 떨어졌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지금의 심정은 어떤가요?
허윤희 : 오히려 한국에서 독일로 유학 갈 때가 더 부자연스러웠습니다. 그 시절에는 예술가가 되기 위해서는 나머지 삶을 포기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다 잘하려고 하면 하나도 제대로 못한다고 생각하며 작업을 하니 나중에는 행복하지가 않았다. 그러다 나중에 드는 생각이 ‘무엇을 위한 예술인가. 삶과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 예술 아닌가.’였습니다. 그래서 예술가로서 독일에서 살 수도 있지만 예술가를 ‘덜’ 하더라도 한국에 들어와 인간적으로 살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욕심 없이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제 발목을잡던 예술이 저를 자유롭게 만들었죠. 수단과 목적이 뒤바뀐 삶이 너무도 괴로웠었기 때문에 여건이 마련되면 그림도 해야겠다는 여유가 생겼고 나 자체로 행복하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운 좋게도 창동에 입주하면서 다시 그림이 시작하게 되었구요. 그림은 자유로움 보다는 긴장감을 주는데 요가를 시작한 후로 그것에 대한 위로가 많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림을 그리면서 내가 그 안에서 긴장과 이완을 다 할 수 있게 되어서 편해졌구요.
김태헌 : 저는 목적이 있으면 모든 것을 놓쳐버리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사이를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그림을 선택해서 자기만 들여다보는 것도 좋지만 이분법적 인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일반적인 사회 풍토가 빨리 규정 지어 답을 내어야 한다는 것인데 지점을 분리시키지 말고 같이 바라보는 태도가 겸비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허윤희 : 요즘 부쩍 조화라는 말이 와 닿더라 구요.^^
유근택 : 시를 여전부터 써 왔습니까?
허윤희 : 글 쓰고 싶을 때 씁니다. 아마추어들의 그림이 부러울 적이 있습니다. 제가 시인이 아니기 때문에 아마추어의 입장에서 내 얘기를 시를 통해 할 적에 편하고 좋습니다.
유근택 : 시가 좋은 것 같습니다. 오픈 할 때 글을 읽어보니 잔잔하고 그림도 시적인 뉘앙스가 전해주는 것도 있어서 다른 작가들과의 차별성을 갖는다면 언어적인 면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시적인 면과 그림의 관계에 대한 생각은 어떠신지요?
허윤희 : 말로 표현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물론 그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그림과 비슷한 내용이지만 글로 옮기고 싶은 것도 있으니까요. 앞으로도 시와 같이 가는 작업을 할 생각입니다.
서진석 : 제 경험상, 쥐어짜고 몰입하고 목적이 있을 때 편하게 즐거운 마음으로 하자고 자기 암시를 하다 보면 나를 합리화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반문이 들게 되던데 허윤희씨는 이전과 현재의 작업에 임하는 태도의 변화에 따른 차이점이 있다면 무엇이 있습니까?
허윤희 : 작업에 있어 자유로워졌다는 것이 가장 큰 변화라고 할 수 있겠죠. 예전에는 강박관념 때문에 몸이 피곤해도 작업실에서 있어야 편했습니다. 그러나 요즘엔 집중적으로 할 때 하고 다른 일을 할 적에는 다른 일에만 몰두합니다. 예전에는 왜 그렇게 바보같이 극단적으로 생각했는지 모르겠어요. 지금도 제가 겪어야 할 과정 중에 있지만 과정을 겪어야 알아버리는 것 같습니다. 제 경험상 놓친 부분에 대한 깨달음은 몸소 겪어야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박소영 : 태도에 따른 변화는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진석 : 모르겠어요, 문화라는 측면 안에서의 평가되는 작업 그런 것에 있어서의 차이점을 얘기하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작가들은 힘들 때 편하자고 컨트롤할 적에 어떤 지가 궁금했습니다.
김태헌 : 힘이 들 때에 편하자고 해서 편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 과정은 흐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지점을 즐겨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박병춘 : 저는 그림을 그리는 행위를 지속하다가 목적이 생기면 막 몰아가다가 그만두고,여기저기를 왔다갔다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는 모든 것이 한꺼번에 실릴 때가 있더군요.
강성은 : 독일에서 했던 작업과 한국에서의 작업이 다른데 이것에 대한 의견은 어떠하신지.
박병춘 : 예전 드로잉을 보면 형상들이 서구적인 면이 강했습니다. 반면 독일에서의 작업에서는 아시아적 정서가 묻어나있는 것 같았습니다. 허윤희씨가 매체로 사용하고 있는 목탄은 동양화로 따지면 먹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작가 자신이 외국에서 살면서 본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유근택 : 독일에서의 작업을 보고 놀랐습니다. 작가에게서 풍겨 나오는 분위기가 변했다고나 할까요? 저항의 느낌이 더 강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강성은 : 독일에서 했던 드로잉은 더 많이 손이 가고 으깨지고 더 까만 반면, 한국에서의 것은 듬성 댄다고 할까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김태헌 : 현재 4층에 전시된 드로잉 말고 이 시리즈가 더 있습니까?
허윤희 : 이 시리즈는 이게 전부입니다.
김태헌 : 그림을 그릴 때 항상 이 상태로 이 느낌으로 작업을 하십니까? 전혀 다른 풍의 작업은
             없습니까?
친구1 : 처음 드로잉작업을 설치할 적에 좀 더 작업을 해서 벽을 꽉 채웠으면 하는 바람을 얘기했었습니다. 그런데 허윤희씨가 ‘순간적으로 나오는 것에 대한 얘기이기 때문에 외국에서 그 장소 그 시간에 한 것이기 때문에 똑같이 나오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정말 순간적인 것에 충실한 작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김태헌 : 저 같은 경우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서 그림을 그립니다. 꼭 그 자리에서 그려내어야 그 느낌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은 취향의 문제라고 생각하는데요.
친구1 : 허윤희씨의 작업은 언뜻 보면 전통적인 방법을 쓰는 것 같지만 독특합니다. 그것은솔직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작가를 1대 1로 대하면 작업이 왜 저렇게 나오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친구2 : ‘더하지 못한다’는 의미는 그 순간의 진실함을 짜내지 못한다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그 때의 기억을 되살려서 작업을 하는 것은 기억에 대한 또 다른 시리즈를 탄생시킬 것이구요. 개인적으로 작업이 좋다고 느꼈던 때는 처음 개인전이었습니다. 대학시절의 작업을 보면서 순수하려고 유도해낸 드로잉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목적화되어 나타났다고 생각했었죠.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그런 것들이 벗겨지면서 정직하게 기록했다고 느끼게 되었고 저는 허윤희씨의 첫 개인전에서 정직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마음에 와 닿았구요. 화려함이 빠져나간 정직이 보여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김태헌 : 정직이라는 것이 굉장히 상대적인 것 아닌가요?
유근택 : 누구나 작업을 할 때 정직하지 않습니까?
박소영 : 정직이라기 보다는 진솔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지 않나요?
유근택 : 정직의 색일 수도 있고 스타일이 다른 것 같습니다. 그것은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진실을 드러낸다는 행위자체가 어려운 것입니다.
강성은 : 독일 표현주의의 영향을 받았다는 얘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요? 물론 그런 느낌이 있긴 합니다만 전 작업을 보면 그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감정이 드러나는 작업에 임함에 있어서 특별한 영향을 받은 것은 있습니까?
허윤희 : 저에겐 독일의 풍토가 잘 맞았습니다. 대학시절에는 교수님들이나 주변의 반응이 없었습니다. 존경하는 교수님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 구요. ‘예술이 뭔가’라는 질문을 던져주는 교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학교다닐 적에는 더 이상 하고 싶지않았습니다. 저는 제 얘기를 하고 싶었는데 학교에서 바라는 것은 그게 아니었으니까요. 독일에서는 하고 싶은 얘기를 목탄으로 그렸습니다. 제 그림을 평가할 적에 교수님이 제가 하고싶은 말을 다 해주셔서 저는 그것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나 자신을 알아준다는 사실에 놀랍고 감사했습니다. 그런 교수님을 만나서 사는 것이 힘들었지만 작업을 하는 내내 행복했다. 더 작업에 열중하게 되었다.
친구2 : 허윤희씨는 은유적이지만 직설적으로 말을 하는 재주가 있습니다. 거기에 시를 덧붙이기 때문에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사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얘기를 하기 때문에 개인의 상처들이 치유되는 느낌을 주는 것이 가능하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본인도 그로인해 치유의 과정을 겪었고 보는 이들도 그런 과정을 겪을 수 있다고 봅니다.
채우승 : 자기가 갖고 있는 것들을 표현함으로써 개운함을 느낍니까?
허윤희 : 일단은 작업을 통해 내면에서 하고 싶었던 것들을 끄집어낼 수 있으니까 어느 정도는 그렇습니다.
채우승 : 많은 부분들이 밖으로 끄집어내기 힘들기도 하고 아픔이 무언지도 모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작업과정이 굉장히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태헌 : 친구들이 본 허윤희씨는 활동적으로 자기 표현을 잘 하는 사람인가요?
친구2 : 겉으로 드러내면서 활동적인 타입은 아닙니다. 묻혀있는 스타일이지만 암암리에 발을 뻗어나가는 ‘과’라고 할 수 있겠죠?
친구1 : 맞는 사람이랑 만나면 굉장히 자유롭고 아닌 사람과는 단절하는 스타일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허윤희씨의 시를 좋아합니다. 전문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심플하게 와닿는 매력도 있습니다. 아픈 부분을 모르기에 표출을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셨는데 허윤희씨의 경우에는 시를 통해 표출되고 그림으로 걸러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의 이런 그림이 되지 않았나 생각도 들고요.
친구2 : 시가 중간중간에 나옴으로써 그림보다는 더 직접적으로 와 닿아서 저는 시를 통해 와 닿는 바가 큽니다. 
박병춘 : 시와 그림이 함께 전시된다는 것은 자칫 시화전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에 시는 시이고 그림은 그림 이어야 한다는 것이 제 소견입니다.
박소영 : 저도 그 의견에는 공감합니다. 시는 시이죠. 작업에 어느 정도 영향은 가겠지만 시와 작업이 같이 보여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유근택 : 저는 시와 같이 가는 것은 좋다고 봅니다. 그림에 언어를 도입하는 것은 도움이 많이 됩니다. 회화적 장치로 언어를 병행하는 것은 가능하고 또한 시하고 그림이 분리되어야 하는 원칙이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채우승 : 시라는 형식을 가지고 있고 그림이라는 형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독립적으로 쌍방이 맞서있기가 힘든 것은 사실입니다. 시가 그림의 일부분으로 작용할 수 있겠지만 시의 양식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림에 끼어들거나 그 반대의 경우에도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친구2 : 허윤희씨의 작업에서는 시가 일부로서 들어간다고 생각합니다. 시와 그림의 한 요소로 읽혀지지 지금의 방법이 결코 우리가 우려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김태헌 : 그것은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라고 봅니다. 제 생각에는 결합방식을 잘 생각하면 작업의 가치가 상승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채우승 : 일정한 공간 내에서의 한계점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 관건이겠네요.
박소영 : 허윤희씨가 벽에 시를 쓰는 것에 대한 생각을 물어보았을 때 저는 반대했습니다. 만약 그랬을 경우, 벽을 점유한 작가의 드로잉이 최대한의 효과를 내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박병춘 : 이번 전시를 통해 허윤희씨의 과거에 대한 상처의 치유가 어느 정도 이루어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 의미가 깊다고 봅니다.
강성은 : 정해진 시간이 다 되어서 오늘 자리는 이것으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바쁘신 와중에도 시간 내 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수업이나 세미나, 워크샵 계획이 있으시면 이 곳 인사미술공간의 아카이브를 이용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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